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한두 살 늘어갈수록, 알레르기 비염의 증상으로 시작하는 코막힘은
더욱 심하게 즉각적인 반응으로 다가온다
코가 막히면서 며칠째 꽉 막힌 숨통은 마치 마음속의 답답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에효...
얼른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이 끈적한 가을의 열기를 식혀주었으면,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콧물과의 전쟁도 끝났으면 좋겠다.
추위를 기다리며 으스스한 몸을 이끌고 찾아간 곳은 숙소 근처의 한 국밥집이었다.
한때는 그저 '청양고추'의 본고장으로만 알았던 이 지역이,
지인의 말을 듣고 보니 소고기로도 손에 꼽히는 명산지라는 것을 알았다.
오랜 세월 동안 금강과 미원천의 맑은 물이 흐르는 청정한 환경 덕에 질 좋은 한우를 길러냈고,
그 소고기가 주변의 광시, 홍성을 거쳐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본디 '광시한우'로 불리던 명성이 '홍성한우'로 옮겨간 것도 그만큼 이 지역의 소고기가 뛰어난 품질을 자랑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첫 방문에 기대했던 소고기 국밥 대신, 어쩐지 속을 뜨끈하게 데워줄 것만 같아 선지 해장국을 주문했다.
한 숟갈 떠먹어보니 맛은 있었지만, 다른 곳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다음번엔 꼭 소고기 국밥을 먹어보고, 이곳의 진짜 명성을 맛보리라 다짐했다.
기대하고 먹었던 선지국밥은 으슬으슬한 몸과 허전한 기대감이 교차하는, 어딘가 쓸쓸한 한 끼였다.
퇴근 무렵, 모델하우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화분들을 버렸다.
관리되지 않아 바싹 말라버린 화분들...
죽은 것을 버리는 일은 어쩐지 지난날의 실패를 정리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렸다.
그런데 모두 버리려던 찰나, 잎사귀 하나 푸르게 살아남은 금전수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죽음 속에서 홀로 버텨낸 그 강인함이 기특하고 애틋했다.
다 버려질 뻔했지만 살아남은 금전수,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 그 생명력처럼,
나 또한 끝까지 잘 살아내자고 다짐하며 금전수만 남겼다. 우리, 앞으로도 끝까지 함께하자.
지방에서 숙소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나 자신을 관리하는 일이다.
특히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매일의 숙제였다.
집에 있으면 집사람이 때 맞춰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걱정 없이 지냈는데,
혼자 있으니 끼니를 거르거나, 어떨 때는 술에 의지해 위로를 받으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다행히 숙소가 고립된 지역이라 술집은 없어 술을 퍼마실 염려는 없었다.
그래서 먹거리는 단백질을 채우고자 하는 생각에 냉동식품을 주문했고,
어제 저녁에 하나를 먹어보니 놀랍게도 맛이 꽤 좋았다.
그 한 봉지에 담긴 따뜻한 맛이 어찌나 반갑던지~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러다 한 번에 다 먹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새로운 근심이 생겼다.
홀로 먹는 밥 한 끼의 소중함과 동시에, 나를 통제해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 아침엔 유난히 일찍 눈이 떠졌다.
아마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근심들이 나를 깨운 것이리라.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혼자 멍하니 잡생각에 빠지는 것이 싫어,
이른 새벽 뒷산의 암자에 올라 오늘은 또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조용히 고민하며 기도를 드렸다.
작은 화분 하나에도 생명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
맛있는 음식 한 조각에 행복해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오늘도 잘 살아내자.
어제 처리한 화분 자리에 놓을 새 화분을 사기 위해 출근길에 화원에 들렀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주인분은 출근 전이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드렸더니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고르세요"라는 따뜻한 말을 들었다.
그 이른 시간에도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셔서 감사해하며
입구에 있는 화분들을 골라서 사진을 찍어 보내드렸다.
이제 곧 우리 모델하우스에 새로운 초록빛 생기가 더해질 것이다. 앞으로도 나와 함께 잘 지내주기를.
모델하우스에 출근해 간단히 내부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거짓말처럼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더없이 푸른 가을의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코가 막혀서 몰랐던 공기도 한결 시원해졌다.
이제 진짜로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이 아름다운 가을 하늘처럼 맑고 시원한 날들만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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